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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

노래의 왕자님: 미카제 아이×현비파

  비파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푸른 잎으로 가득하고 조금 가파른 길을 따라 차들이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비파가 여기까지 온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아이의 촬영 현장에 시나리오 건으로 찾아가게 되면서였다. 그 때는 급하게 지나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었기에 지금 이 장소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낯선 장소임에도 기시감이 느껴졌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럴 때면 비파는 가슴께가 묵직해졌다. 마치 목구멍을 무언가가 막고 있는 것 같은 이물감이 선명했다. 비파는 천천히 길을 걸어가면서 불쾌한 기시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걸어가는 길, 지나가는 사람, 늘어선 가게들, 그 모두가 썩 반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비파는 왼편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대충 둘러보아도 앉을 자리는 없는 듯 해서 위층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온 음료를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시계를 보았다. 아이가 도착하기까지는 이제 대략 10분 정도 남았다. 건너편에서 도착하려나 아니면 이 앞에서 멈추려나. 비파는 스튜디오와의 거리를 생각하면서 이대로 있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건너가 있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날씨가 아직 더워서 그런지 플라스틱 컵에는 금방 물기가 어렸다. 비파는 컵에 끼워진 홀더를 잡고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시 그 앞에 서있었다. 아이에게선 아직 연락이 없었다. 30분 전에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지금쯤 거의 도착했을 터였다. 도착하면 또 연락을 주겠지만 딱히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여기에 서있을 것인가 하면 그것도 조금 싫었다. 이 거리는 너무 낯설면서 너무 익숙했다. 그 괴리감이 불쾌감이 되었다. 아이가 오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여기에 새로 생겼다는 디저트 가게는 밥부터 먹고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이런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비파도 잘 알지 못했다.

  비파가 다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건너편 신호등 근처에서 택시 한 대가 섰다. 택시 창문 사이로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이 무척 익숙했다. 비파는 반가운 마음에 도로 근처로 발을 옮겼다. 예상대로 아이가 택시에서 내려서 도로를 건너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 눈이 둥그렇게 호선을 그렸다. 비파는 반가움에 왼손을 번쩍 들어서 흔들었다.

  “아이!”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횡단보도 앞에 서는 연인을 보고 무심코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때, 아이가 비명을 지르듯 비파의 이름을 외쳤다. 그와 동시에 밀려드는 커다란 경적 소리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빛이 눈앞에 쏟아지고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비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에는 여름의 녹음이 서려있었다. 이제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였지만 여름의 흔적은 나무에도, 공기 중에도 남아있었다. 비파가 이 곳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할 만큼 낯선 공간임에도 비파는 기시감을 느끼고 침을 삼켰다. 조금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는 차를 보며 비파도 걸음을 옮겼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를 주문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도착할 터였다. 비파는 왼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다시 거리를 보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이상한 거지? 정확히는 아까는 분명 기시감을 느끼지 않았던 카페와 지금 손에 든 커피가 이상했다. 갑자기 이 상황을 어디서 겪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으며 건너편 도로를 보았다. 그 곳에 때마침 택시에서 내리는 익숙한 푸른 머리가 보였다. 반가움에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아이!”

  “비파!”

  아이의 목소리는 비명과도 같았다. 왼쪽에서 귀를 울리는 경적소리가 들렸다. 왼쪽을 돌아보고 비파는 깨달았다. 아,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다시 아이 쪽을 돌아보고 눈을 감았다.

 

  이 낯선 거리에 도착하고 비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요상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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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Water - DJ Okaw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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